#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2월4일 #금요일 #누가복음9:51-6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시려 했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시기에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람들을 향해 야고보와 요한이 화가나서 불을 내려 멸망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지 그들을 꾸짖으시며, 다른 마을로 가신다. 예수를 따르려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니 각각의 이유를 말하면서 시간을 달라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모습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누가복음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를 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주님이 물어보신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막아선다는 이유로 불을 내려 멸망시키기를 원하는 마음을 예수님께 비추자,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예수님을 위하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을 해 본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사이가 안 좋았었고, 그렇기에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유대인들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과 사이가 않좋았던 그들에 의해 제지를 당해 기분이 상했던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길을 방해해서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야고보와 요한이었다면... 아마도 나도 똑같이 그러지 않았을까? '감히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막아서?' 이분이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 알아? 라고 말은 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고, 가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신들도 덩달아 대우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해 주지 않는 자들을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가?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 대우받아야하며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지는 않나? 아마도 필라에서 그런 모습에 물들어버린 나를 다시 바른 목회자로 만들어주시기 위하여 이곳 어스틴으로 보내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한다.
누가는 이런 상황 뒤에 예수를 쫓겠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을 기록하고 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이다. 그래도 따르겠냐고 하신다. 그 후에도 각자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세상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 후에 따르겠다고 하지만, 세상의 것들을 놓지 않고서는 예수를 따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오늘 주님은 내게 '예수를 위한다는 말은 네가 생각하는 세상의 것들을 내려 놓을 때' 가능하다고 말씀을 해 주신다.
목회자가 된 이유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대우 받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목회자가 된 이유는 복음을 전하고, 세상에 빼앗긴 자들을 다시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오심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것을 내려놓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스틴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자로 훈련시켜 주심이 느껴진다.
철저하게 세상의 물든 나를 씻겨주시는 주님께 감사해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목회자로 거듭나기를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주님. 내가 원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자로 훈련시켜 주심에 불평과 불만하지 말고,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