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0월6일 #수요일 #욥기 3:11-26
계속해서 욥은 자신의 태어남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지 아니하였거나, 죽었더라면 악한자가 소요를 그치고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갇힌 자가 평안하고, 호통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작은 자와 큰자가 함께, 종은 상전에게 놓임을 받게 되는 곳에 있을 수 있었음을 생각한다.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는 자신에게 왜 빛을 주셨고, 탄식과 앓는 소리만 있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여서, 평온도 없고, 안일도 휴식도 없어 불안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욥기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두려움이 임하면 평온과 진정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없고, 오직 불안만이 있게 된다는 고백을 한 욥을 보게 된다.
두려움이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무서워하며 마음이 불안한것을 두렵다고 한다.
욥은 무서워하는 대상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몸에 미쳤다고 했다. 결국 그에게 임한 모든 재앙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였다. 그는 그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번째 생각이 욥에게 들었던 생각이지 않았을까?라고 느껴진다.
그는 그로인해 마음이 불안해 졌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있었던 평온과 안일과 휴식이 다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마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쉼을 주겠으니, 당신께로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멍에를 메지말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하신다. 그 때, 나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욥은 자신의 멍에만을 생각하고 있기에, 진정한 안식과 평안이 없음을 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해야 할일.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 아직도 나는 자꾸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피곤해하고, 뭔가 끝날 것 같지 않는 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짐과 멍에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가지도 못하고, 예수님께 나아간다고 하면서도 결국 내 짐을 짊어지고 예수님 앞에가서, 나의 수고와 아픔과 고통을 좀 봐 달라고 나를 보여드리는 것이 아닌, 내 짐을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고작 기도하면서, "주님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요?" 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욥과 다를 바가 없다.
욥이 무엇을 깨닫고,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결국 마태복음 11:28-29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멍에를 매야한다. 욥도 주님의 멍에를 매야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멍에에 자꾸 집착한다. 결국 나의 안식을 멍에를 통해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예수님께 나의 멍에에 묶이지 않고,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께 배워보기로 결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짐을 내려놓자. 해결되지 아니할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에 주님과의 동행의 시간을 가져보자. 주님께 나의 짐에 대한 해결책을 달라고 하기 보다는, 나에게 허락하신 상황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 보자.
"힘들어요. 주님 어찌하여..."를 말하기 보다는 "이 상황에서도 주님은 나를 통해 영광받으실 것이 있으심을 믿습니다" 를 선포해 보자.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님은 나를 통해 영광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나는 연약하고, 매일 나의 짐만을 바라보면서 한탄하고 있지만, 주님은 예수님께 나아오면 참된 안식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젠 나의 짐이 아닌,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제가 되게 해 주세요. 내 힘으로는 안될 것을 알기에 성령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성령님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심으로, 진정한 평안과 쉼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