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7월9일 #토요일 #고린도후서1:23-2:11
고린도성도들을 아끼기 위하여 고린도에 가지 않았던 바울은 근심중에 그들에게 가면, 근심을 하게 한 자만 기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으로 눈물로 서신을 써서 보내면서 근심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 근심하게 만든 자들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차라리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 사랑을 나타내라고 한다. 이것이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고린도후서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탄에게 속아 근심을 만든자들을 기쁘게 하지 말고, 근심을 버리고 나의 기쁨에 거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린도 교회의 안좋은 상황을 듣고, 고린도 전서를 통해 성도들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이후에 다시 고린도를 방문했지만, 대적자들로인해 바울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본인이 그곳으로 직접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복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더 근심을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물의 서신을 쓴 것이다.
바울은 이런 상황을 조장하는 사탄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래서 근심하게 만드는 자들에게도 결국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고린도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음을 본다.
자신이 대적자들에게 온갖 수모와 모함을 받고 있음에도 그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만약 나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목숨걸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나아갔는데, 대적자들에 의하여서 중상모략과 모함을 받고 상처받게 된다면, 당장 찾아가서 내가 받은 억울함 때문에 나를 정당화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을 찾아가기 보다는 서신을 써서, 사단의 계략을 차분하게 설명을 하였고, 거기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반응으로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변화받기 전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그러했던 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을 용서하셨듯이, 다른 이들을 그렇게 대했고, 또 이 모든 것이 사탄의 계략인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상황에 대해 나의 감정대로 반응을 한다.
내게 피해가 올 것 같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많이 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그렇게 대적하게 되면, 사탄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대적자들에게 용서와 위로와 사랑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쉽지 않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세상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며 살아가면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가 오늘 바울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나의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있다면, 나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도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씀을 묵상한 것을 적용하며 지낼 때,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길 기도한다.
사랑의 주님. 근심에 대한 반응이 감정적이지 않게 하시고, 한걸음 물너 날 줄도 알게 하시고, 용서와 위로와 사랑으로 대하여 사탄에게 속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책망하며 바로 잡으려는 일방적인 태도보다 용서하며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타낼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