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0월27일 #목요일 #창세기40장9_23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듣고 해석을 해 주는 요셉. 꿈의 해석대로 술 맡은 자는 복직을 떡 굽는자는 죽임을 당하였다. 요셉은 술 맡은 자의 꿈을 해석해 준 후,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다.
창세기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
요셉은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해석이 되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런데 요셉도 자신의 어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해 주셨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삶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급할 때 다르고, 편안할 때 그 마음이 달라진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하나님을, 그리고 요셉을 잊었다.
주님께 삶을 맡겨드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임을 본다. 요셉은 인생이 주님께 있기에, 그 인생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 같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잠깐 이지만 마음을 주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결과는 역시나였다.
요셉을 탓할 수 있을까? 나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기도하고 준비하지만, 주님이 만나게 해 주셨다는 확신이 들면, 어느덧 사람을 의지하려고 했던 모습이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이다.
그럴 때면, 어느덧 내 안에 기도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움직이려고 했었던 것이다.
요셉과 같이 자신의 억울함을 다른 이들에게 토로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기대하려 할 때, 항상 실망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다. 그분이 나를 전적으로 사랑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나는 그분을 잊고 떠날지라도, 그분은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고,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감사할 수 있다. 내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나를 잊지 않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죄를 알면서도,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신 죄값을 치뤄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분께 붙어 있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나의 도움을 사람에게 구하지 않기로 결단한다. 기도하고 있는 부분중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계속 기도해야겠다.
사랑의 주님.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게 하시고, 사랑의 대상으로 대하게 하소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삶을 맡겨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