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6월22일2023 #목요일 #사도행전 2:22-36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그들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준 바 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인들을 빌려 그를 못박아 죽였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시고, 이미 다윗은 그분을 미리 보았고, 예수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 즉 예수님의 부활을 본 증인이 자신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셨고,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오늘 기도하던 자에게 부어주셨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31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다윗은 미리 보아서 부활을 알았다면, 너는 이미 말씀으로 증언된 것을 들었기에 부활을 믿고 확신하여서, 담대하게 선포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성령님이 임한 사건을 두고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을 하고, 다윗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윗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고, 자신도 그분과 함께 부활함을 믿었고, 그렇게 그는 부활신앙을 가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하였기에,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도,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복된 믿음이라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을 볼 수 있다. 그 말씀이 진리이기에, 말씀에 기록된 대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증인들이 증거하고 있기에, 그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보지 못하였기에,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들이 직접 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공자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공자의 책만 보고 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유독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은 예수에 관한 기록된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넘어 기록된 문헌도 있고, 증인들도 있었음에도 예수만큼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부활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부활.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활.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윤회설을 믿기도 한다. 그래서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 말씀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약속된 성령님을 체험한 자들이 믿을 수 있게 됨을 말이다.
물론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들은 굳이 성령의 체험을 하지 않아도 부활을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성령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담대하게 그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렇기에 성령의 체험이 있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안에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말씀이 믿어지게 된다. 말씀이 실제 내 삶이 된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믿어지기 힘들었던 말씀들이 믿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그랬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죄인인것을 알지 못했고,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당연히 부활은 상관없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임하였을 때, 내 안에 죄가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 죄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게 되었다.
이 후, 말씀을 통해서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믿어졌던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예수를 어떻게 만났고, 믿게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나의 삶과 베드로의 삶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내 삶도 베드로처럼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나는 베드로와 같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회개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함께 선포했음을 본다.
예나 지금이나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 이들은 많이 없다. 하지만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부활을 선포할 수 없기에, 나의 말씀 선포가 어떠한지 돌아보게 하신다.
말씀은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말씀은 죄를 보게 하여, 돌이키게 하고 회개하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회개를 한 자들만이 부활의 신앙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던 날을 왜 돌아보게 하셨을까?
지금 내가 바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목회자로서 성령을 체험하길 사모한다면, 회개와 부활의 복음을 반드시 선포해야 함을 말씀해 주심을 깨닫고, 이번 주 말씀을 또 다시 확인하고 점검해 보게 하신다.
사랑의 주님. 제가 성도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바르게 전함으로 회개하고 성령을 체험하는 자리로 인도하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