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대우한 부분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화를 낸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를 잘 대처해서 위기를 넘긴다. 이 후 기드온은 숙곳에서 미디안 왕들을 추격하고 있다면서 음식을 구해보지만 그것을 거절하니, 화를 내며 그들의 멸망을 이야기 한다. 브누엘 사람들도 같은 대답을 하니 기드온은 또 그들에게 보복할 것을 선언한다.
사사기 8: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리라"
기드온의 말 한마디에 동족인 에브라임의 노여움이 풀렸다. 하지만 기드온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한 말로 보복을 선언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여 나오는 것이고, 행동 또한 그렇다. 다시말해 그 사람의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반영이 되어 인격을 형성시켜나가는 것이다.
잠언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기드온은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께 재차 함께 하심에 대한 확인을 받아서,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드온의 말이 문제가 생겼다.
여호와를 위해, 기드온을 위해... 이 말에는 분명 그의 생각이 담겨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에브라임 사람들을 대할 때 보면, 말이 부드러워졌다. 그들과 싸우려하지 않는것 같다.
그런데 3절에 여전히 그는 "내가 이제 행한 일" 이라고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자신에게서 배제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결국 그는 동족과의 갈등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그렇게 말한것 같이 보인다.
이 후, 그는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기드온이 얼마나 교만해졌는지를 그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심판자가 되겠다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자신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숙곳과 브누엘도 여호와께 여쭤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서, 그들을 멸할 것을 선언해 버렸다.
그의 말에는 또 여호와가 배제되어 있다.
나를 돌아본다. 나의 말한마디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이 녹아있는가?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가?
언젠가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성도들에게 대하는 말과 가족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꼭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 처럼, 가족에게는 숙곳과 브누엘 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멀리하고 있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요즘은 내가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가족을 대하고 있는지 말이다. 여전히 고쳐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묻어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면, 나는 목사 이전에 그리스도인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목회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드러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사랑의 주님 기드온의 말을 통한 그의 인격은 저와 다를 바 없네요.
기드온을 욕하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하였던 저를 반성합니다. 제 말을 변화시켜주시고, 제 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담아,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죽이는 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