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7월11일2023 #화요일 #사도행전9장23절_31절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성문을 지켰는데,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내려가게 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였지만, 그를 믿는자가 없었는데,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사울의 변화받음을 증언해 준다. 이 후 사울은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예수의 복음을 전할 때, 또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힘썼다. 이에 사울은 다소로 보내지게 되고,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
사도행전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피스메이커의 역할도 네가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또 아라비아로 (갈1:15-18)가서 3년을 지내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은 이런 사울을 죽이려 했지만, 제자들의 도움으로 피할 수 있었고, 사울은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알기에, 사도들은 그를 믿을 수 가 없었는데, 바나바가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나 변화되었는지를 변론해 주면서 중재를 한다. 이를 통해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때문에 또 죽임을 당할 뻔 하지만, 가이사랴로 가서 다소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실 바나바가 사울을 왜 도와주었는지, 어떻게 도와줄 마음이 생겼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바나바는 성령과 은혜에 충만한 자였고, 그리고 그의 이름에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 있기에, 바나바는 사울이라는 사람의 변화받은 모습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울을 보았고,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도 들었을 때, 진심으로 회심한 자였음을 믿고, 사도들에게 사울을 변론했던 것 같다. 바나바는 사울의 보증수표가 된 것이다. 보증수표는 그 사람을 단지 변호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끝까지 책임져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 후 바나바는 자신의 사역에 사울을 함께 동참시키며 계속 그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나바는 예수의 마음으로 끝까지 사울을 품어 준다.
나를 돌아본다. 나는 목회자로서 교회 안에서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교회는 참 말이 많은 곳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충만이 먼저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들, 성도와 성도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성령에 충만이 임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사도들도 감히 사울을 바나바가 생각한 것 같이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지만, 그 안에 여전히 경계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음을 본다.
그럼 바나바는 뭐가 달랐을까?
그는 위로하는 자였다. 소외된 자들을 먼저 찾아갔을 것이고, 눈에 띄지 않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을 것이다. 사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복음으로 변화되었지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바르게 봐 줄 사람이 없었는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바나바는 사울을 보는 눈이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목회자의 눈이어야하지 않을까?
바나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가진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교회 소외되고, 눈에 띄지 않는 성도님들이 누가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눈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연락을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목회자로서 교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중재할 수 있게 하시고, 혹시 소외된 자들이 있다면, 바나바와 같이 '위로한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