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6월6일 #월요일 #고린도전서15:20-34
그리스도가 죽은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한다. 아담으로 시작된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은자가 새로운 삶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되어 그리스도께 속한자,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예수님은 왕이 되시고, 사망은 멸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것이다. 죽은 자들은 반드시 살아 날 것인데, 사도바울은 자신도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바울이 말한다.
고린도전서 15:31 "... 나는 날마다 죽노라"
"너는 날마다 너를 죽이며 살고 있니?" 주님이 물어보신다.
말씀은 죽은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오시는 그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부활이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부활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은 매일 죽고, 매일 부활한다고 말을 한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묵상해본다.
특히 바울은 악한 동무들의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것에 속지 말라고 충고 하고 있다.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내가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한 행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즉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드러나는 행실이다.
그런데 사단은 그런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부활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 삶이 끝이기 때문에, 오늘당장 잘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나를 죽어야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정도의 기준이 있어야지 삶을 잘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내 마음에 왜 교회가 성장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성공한 목회자로 보이기 위해서, 교회의 성장을 통해서 무엇인가 내가 얻을 유익을 바라기 때문에라면 나는 나를 죽이고 사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없을까? 아니다.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마음을 죽이고,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통해 주님께 영광돌리며, 기도와 찬양을 통해 우리의 영이 세상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갈 수 있음을 믿고, 예배와 기도와 찬양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그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싶다면,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나를 날마다 죽일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를 버리며, 신본주의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 기도하다가 문득 성경 읽기 목표를 세워놓았지만, 아직 반도 채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또 다시 오늘부터 말씀 통독과 연구에 들어가기로 결단한다.
그래서 말씀으로 나를 비춰보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기로, 그렇게 나를 죽이기로 결단한다.
6월 한달 안으로 구약을 1독을 마치기로 한다.
사랑의 주님. 나를 쳐서 복종시켜 날마다 죽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 말씀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적인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게 하소서.
아멘!!.
나는 죽고 내안에 예수그리도가 사는 그 은혜를 누리며 오늘도 십자가의 크신 사랑과 희생을 더 깊이 묵상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