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6월30일 #목요일 #시편26:1-12
시편기자는 자신이 진실하게 살아왔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살펴주시고, 시험하여 자심의 뜻과 생각을 단련해 달라고 고백한다. 자신은 주님의 진리 중에 행하였고, 무죄하여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한 일들과 주님이 행하신 기적(은혜)을 말하겠다고 한다. 주께서 사는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니, 죄인들과 함께 생명을 거두어가지 말아달라 기도한다. 자신이 계속 진실하게 살겠다고 고백한다.
시편 26:2 "여호와의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내 앞에서 믿음의 당당함을 보일 수 있겠니?" 주님이 물어보신다.
다윗의 고백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선 모습이 그려졌다.
이것은 교만함이 아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잘 못 된 부분이 있다면 주님 앞에서 얼마든지 훈련을 받겠다고 부탁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다윗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9절에서 '자신의 영혼을 죄인과 함께,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말아달라'고 고백한다.
죄인들과 함께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시험을 당하고, 단련을 받으면서까지 주님의 전에 거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
사실 나는 평탄한 삶을 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이다. 나는 세상에서 대단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력없는 그런 인생도 원하지 않았다) 단지 어느정도의 위치에 올라가면 그 자리를 잘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님을 묵상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내가 안주하고 싶어하는 삶에서 만족하며 지내게 될 때,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라, 점점 세상에 치우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윗은 충분히 주님과 동행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주님이 자신을 살펴달라했고, 시험하고, 단련해 달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스스로가 자신을 살피면,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이라는 생각이 나의 신앙을 침륜에 빠지게 만든다.
목회의 생활에서 가장 안주할 수 있을만한, 평안한 위치에 있을 때, 주님이 나를 어스틴으로 교회 개척을 시키신 이유는, 그분이 나를 세상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 자신을 살피는 삶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임을 묵상하게 하신다.
그럼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접근방법으로, 성도들을, 그리고 전도를 하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삶에 있어서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처한 상황에서 끝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복음을 증거하며, 무엇보다도 내가 이 모든 상황들에 스스로 나태해 지지 않도록 주님 앞에서 철저한 훈련의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주님 앞에서 다윗과 같이 당당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주님이 원하시는 계획표대로 나를 맞춰 나아가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제게도 다윗과 같은 주님 앞에서의 당당한 믿음과 신앙의 모습이 있기를 원합니다. 스스로를 살피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기준으로 나를 살펴, 나를 위한 주님의 시험과 단련을 감사함으로 받아, 주의 복음을 전하고, 은혜를 알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나를 살펴보시는 주님!!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합니다.. 연약한 부족한 어린양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은혜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겨 주시어 영혼 깊은 곳에서 부터 주님을
송축하는 삶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