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하는 일이 헛된 일이라고 말하는 시편기자. 세상의 군왕들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못하고, 벗어나려고 한다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며 진노하시고 그들을 놀라게 하신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분에게 유업으로 모든 나라와 땅을 허락하신다. 세상의 군왕들은 그들의 소유가 모두 부숴지고, 참된 지혜와 교훈을 받아야 함을 알게 된다. 여호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 그들이 어느길로 가야할지를 선포한다.
시편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어리석은 세상을 보시면서, 진노하시지만, 여호와께 피하여야 하는 참된 지혜와 교훈을 얻어야 함을 알려주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은 주님의 은혜를 묶였다고 생각하고, 벗어나려고만 할까?
주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이 왜 싫을까? 곰곰히 묵상을 해 본다. 자신의 만족, 쾌락, 욕심을 채우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으시니,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이건 세상의 모습이라고 하고, 교회 안은 어떠한까를 생각해 본다.
구원은 받고 싶지만, 세상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 특별히 코로나가 조금씩 풀리면서, 여행도 많이 가고, 하고 싶은 것도 즐기면서, 교회로 모이는 것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모습들이 있는 성도들. 과연 이들에게 시편 2편의 말씀은 어떻게 들리게 될까?
"너는 내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라는 말씀으로만 위안을 받고, 또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정작 이런 이들을 보시면서 더 화가나시지는 않을까?
그럼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묵상한다.
나는 목사이기에, 교회를 떠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떠한가? 교회 안에 있지만, 내 마음도 여전히 세상의 즐거움을 갈구하고 있고, 목사로서의 사명을 때로는 너무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위선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나 스스로를 보면 솔직히 그런적이 없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한때 나는 주일에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나의 모든 피로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였던 때가 있었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법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뭔가 목사라는 직분이 은혜이기보다는 나를 속박하고 있다(?)는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시편기자는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하신다. 그래야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이 아니라,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아야 하고, 상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신 예수님은 나를 너무 잘 아신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주님을 더 알기 원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
자꾸 자꾸 더 주님을 볼 수 있도록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성령을 초청해야하는 것은 당연한것이고, 나의 의지로 말씀을 더 가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다.
말씀의 지혜와 교훈을 얻을 때, 나는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향한 주님의 모든 은혜가 결코 속박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 주님을 알아가고, 만나고, 체험하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성령으로 함께 해 주세요.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목사로서가 아니라 주의 자녀로 주님의 비웃음을 받지 않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