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세상의 방법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여호와께 피하며 그를 의지한다.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계시고, 보좌는 하늘에 있으며, 그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을 살피신다. 또한 의와 악에 대한 분명함이 있으시고, 악인의 소득은 아무것도 없으되, 정직한 자는 주님의 얼굴을 뵐 것이다.
시 11:7 "여호와의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너는 내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니?" 주님이 물어보신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소리에 당당히 "아니오!"라고 외치며, 자신이 피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선포하는 다윗.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의로우시고, 정직한 자를 원하시는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의로움이 무엇일까? 그의 의로움을 알아야 내가 주님이 좋아하는 일을 할텐데 말이다.
다윗을 보면, 그는 온전히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피할곳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상에 선포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의로움은 결국 내 삶의 기준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은 정직한 자가 여호와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다윗은 성부하나님 뿐만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을 보고 느끼고 깨달은 자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는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자신을 비추어 주님 앞에서 정직했던 자였다. 그가 실수를 하였을 때도, 그는 말씀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었음을 알고 있다.
다윗을 통해 나를 본다. 나는 세상에 '아니오!'라고 외치는 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나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생각과 기준을 따라가다가도,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정당화 하려고 했었던 수 많은 사건들이 기억에 난다.
여전히 나는 다윗을 쫓아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다윗은 3절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라고 말을 한다.
결국 다윗과 나의 다른 점은 "터"에 있었다.
반석위에 믿음의 집을 지은 다윗과, 모래위에 믿음의 집을 지어놓은 나를 비교하게 된다.
오늘 하루도 수없이 많은 생각과 결정과 판단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나의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보내고 싶다.
물론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오늘도 성령님께 간구한다.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여, 주님의 기준이 나의 모든 영역의 기준이 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주님을 향한 정직한 신뢰로 주님을 뵙기를 소원한다.
사랑의 주님 오늘 하루 주님 앞에 정직한 자가 되게 하소서. 나의 의롭지 못함을 정당화 하려는 모든 생각과 말들을 멈추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게 하셔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