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5월11일 #화요일 #출애굽기 15:22-27
드디어 가나안땅으로의 여정이 시작이 된다. 홍해에서 수르광야로 들어가 마라에 이르렀다. 사흘을 찾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기에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여호와께서 가리키시는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고, 그 때 여호와는 법도와 율례를 정해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시겠다 하시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할 축복을 말씀해 주신다. 그 후 엘림에 이르니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고, 장막을 쳤다.
출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믿음은 인내야. 리더도 믿음으로 인내해야한다. 성도들이 힘들어할 때, 더욱더 믿음의 말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야해." 주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신 마음이다.
3일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감사도 없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지 못한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했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죄악 중 가장 큰 죄악은 "깜빡"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애굽에 온갖 재앙으로 이스라엘 눈 앞에서 멸망시키시며,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는데, 그 은혜는 이젠 그들에게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전 것은 그들에게는 무의미해졌다.
그런데 이에 모세에게 항의하고 나서자, 모세는 즉시로 주님을 부른다. 물론 주님을 부르는 것이 틀린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오늘 묵상을 하면서, '왜 모세가 담대하게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주님께 나아갔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로 인해서 주님은 오히려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순종을 하며 규례를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재앙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 않아도 될 원망과 불평으로, 그들은 스스로 법도와 율례에 갇히게 되는 삶을 시작하게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에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분별하기 원하셨지 않았을까?
'순종'이란 '불평과 원망'이 빠진 마음으로 '말씀을 온전히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신다.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는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주님은 엘림에 12개의 물샘과 종려나무 70그루를 허락하신 은혜가 있었다.
그들에게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바뀐것은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결과가 되었다.
당장에는 은혜와 같았겠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생기게 된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 내게 지금 당장 필요한것에 대해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히려 그 기도보다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지금 주님이 왜 이런 상황 가운데 나를 놓아두시려는지, 그리고 주님이 이미 준비하신 은혜를 기다리겠다는 입술의 고백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 집안의 가장으로, 한교회의 담임으로 내게 필요한것은 '믿음의 참을성'과 '믿음의 선포'가 동시에 필요함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일들 가운데, 급하게 무엇을 이루려기 보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초조함을 갖는 것 보다, 먼저 믿음의 선포를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믿음 없는 말과,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을 우선적으로 실천하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길 결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