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4월28일 #수요일 #출애굽기 10:12-20
죽음을 두려워한 바로 "당신"
여호와께서 동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들을 불러서 애굽에 남은 희망이었던 모든 밭의 채소와 나무열매들을 다먹게 하셨다. 이에 바로는 모세를 급히 불러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모세의 기도 후 서풍이 불어 메뚜기들이 따 없어졌지만,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다.
축애굽기 10: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바로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재앙에도 크게 요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다르다.
메뚜기의 재앙 앞에 그는 모세와 아론을 급하게 불렀고,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바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것이다. 단순히 자신 앞에 놓여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을 뿐인데도 그는 그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급하게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을 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 이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질 것까지도 깨달은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가 단순히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 했던 것이지,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신명기 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죽음"의 그림자가 걷혀지자 그는 즉시로 마음을 완악하게 먹어버린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보내지 않았다. 바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그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 자신을 돌아본다. 분명히 나도 인생에 있어서 두번의 "죽음의 그림자"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내가 그 당시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번의 고비를 넘기고 난 후 나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그분이 다스리시는 삶"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닌것 같다.
바로와 내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매일 큐티를 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지만, 어느 순간 나를 보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생각과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이다.
삶에 고통과 아픔이 있어야만 '재앙'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내 삶속에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죄에서 놓임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생각을 놓쳐버리는 순간. 그 순간이 내게는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순간 내게는 '죽음, 곧 영적인 죽음의 그림자'가 놓이게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도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이 되어 버린것 처럼, 오늘 나에게 여호와와 상관없는 '재앙'의 삶,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놓쳐 스스로의 삶을 '재앙'의 삶으로 만들지 않기를 기도하고 결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