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0월19일 #화요일 #욥기 9:11-16
욥은 자신의 날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이 불평을 하지않고, 억지로라도 즐겁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주님께서는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할 것이기에 두렵다고 한다. 어짜피 자신은 악한 사람이라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하는건지, 자신이 아무리 정결하게 하려고 해도 또 다시 주님은 자신을 더럽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과 다른 존재이기에 자신과 시비를 가리거나 어느 누구하나 누구의 잘못인지 판결해 줄 자도 없다고 한다. 주의 막대기와 위엄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욥기 9: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욥은 하나님께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대답해 주시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심판자이시기에 자신을 죄인으로 정죄하였고, 이에 돌이킬 수 없기에 중재할 사람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욥은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는것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히 잊게 된 것 같다.
내가 욥과 같은 고통을 당해보지 못하였기에, 나는 절대 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욥을 보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래도 욥은 하나님께 대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대화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잘못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하나님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참 중요한 듯 하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도 변론할 기회를 달라고 막대기를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도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욥의 상황과 마음을 다 알고 계시기에, 욥의 설명이 필요없는데도, 욥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또한 마찬가지인듯하다. 자신이 고통속에 있을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질 때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니 말이다. 그 생각은 아마도 내가 제일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상황을 허락하신 분이 여호와이시고, 그 상황을 통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허락해 주실 분도 여호와이신데,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욥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다. 스스로 다시 긍정의 마인드를 가져보자고, 그러면 상황이 좋아보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새롭게 시작을 해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안된다. 왜그럴까?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욥에게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만든 하나님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인생의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영광은 보지 못하고, 모든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의 문제도 욥과 다를것이 없다. 자꾸 내 눈은 상황과 환경으로 쏠리고 있기에, 정작 상황을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까지 가는 것이다.
그럼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 눈을 돌려야 한다. 상황을 보는 눈이 아니라,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눈을 주님께로 향했다. 사도바울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면서, 자신이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위하여 상황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눈을 돌리자. 그러면 상황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오늘 하루 나의 눈을 상황에 초점맞추지 않는 연습을 하면서, 상황을 넘어 상황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만나는 훈련을 해 보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제 눈을 상황에서 상황을 통해 역사하실 주님으로 돌리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