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시 요셉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요셉에게 아버지가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하셨음을 말하고 다시한번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니 요셉이 듣고 울면서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 해준다. 요셉은 110세를 살다가 죽었다.
아버지 이스라엘을 떠나보낸 형들은 이제 다시 요셉을 두려워한다. 혹시나 요셉이 자신들을 향한 앙심을 아버지때문에 참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한번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이미 요셉은 이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그 용서를 넘어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한번 형들에게 이야기 해 준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고, 그 가운데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이 형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형들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회개를 했으면서도 왠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죄를 간과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회개할 때 더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말씀을 바르게 깨닫게 되면, 요셉의 형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입장에서 계속 용서를 구하는 자들을 생각해 본다. 부모인 내가 자녀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는데, 계속 자신이 잘못했던 것으로 주눅들거나, 두려움에 쌓여 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본다면 내 마음은 답답할 것 같다. 주님도 그렇지 않을까?
이미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값을 치뤄줄 수 있도록 허락하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죄 값을 치뤄주셨기에 더이상 나는 죄로 인해 두려움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는 지옥이 아닌 천국에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회개할 때, 주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아니 이미 용서해 주셨다. 그렇다면 나는 죄에 묶인 삶이 아니라, 자유함으로 용서를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자유함이 방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용서 해 주심에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죄에 묶여서 사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지만, 죄에 대해 자유함의 의미를 잘못 기억하고 마음대로 살아간다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다.
용서해 주신분을 기억하고, 용서에 대해 감사함으로, 진정으로 회개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사랑의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방종함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