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2월17일2023 #금요일 #사무엘상14:24-35
전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을 때, 사울은 백성에게 맹세시켜 금식을 선포한다. 요나다는 사울의 금식선포를 알지 못하고 꿀을 찍어 먹었을 때 눈이 밟아졌다. 백성 중 한 사람이 사울의 금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요나단은 아버지가 땅을 곤란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백성들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피곤해있었기에, 탈취한 것들을 피채 잡아먹었고, 이를 사울에게 보고하니 사울은 제단과 같은 돌을 준비하고 그 위에서 잡으라고 명령하였다. 사울이 여호와를 위한 첫 제단을 쌓았다.
사무엘상 14:24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리더가 공동체를 현명하게 이끌지 못하면, 공동체가 죄의 길에 들어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
사울은 전쟁중에 있었다. 전쟁을 하는 백성들에게 음식을 충분히 먹여서 더욱 힘을 내어 싸우게 해도 모자를 판에, 사울은 현명하지 못하게 백성들을 이끈다.
왜 그랬을까? 사울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거룩하게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하나님께도 그렇다.
사울은 경건의 모양만 내려고 했던 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보이는 잘못된 경건의 모습들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데, 왜 사울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려고 했을까?
요나단을 본다. 요나단은 꿀을 찍어 먹고 눈이 밝아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힘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금식 선포를 듣자, 아버지가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하며 비판한다. 물론 사울의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백성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요나단의 이 말로 인해서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줄 수 있었을 텐데, 단순히 리더를 비판하는 것으로 끝내 버리니, 백성들은 자신들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자신들의 허기만을 채우면 된다면서 고기를 피째 먹어버린다. 율법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금하셨던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현명함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모습만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중심에 경건의 능력이 생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멈추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리더이다.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안에 경건의 모양만을 드러내려는 모습은 없는지를 돌아본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TEE를 시작하게 된다.
새벽에 기도하면서 TEE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해 보았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닮아가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다.
현명한 리더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단순히 금식을 하는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해야 한다면 그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줘야 하고 예수님이 왜 금식하셨는지를 알려줘야한다. 그리고 금식할 때는 사람들이 금식하는지 모르게 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금식에 대한 생각도 알려줘야한다.
바른 이해를 시키고 이끄는 리더가 아닌 강요하는 리더는 현명하지 못하게 성도들을 이끌 수 있음을 기억하고, TEE 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알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도록 바른 리더로 나아가기로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TEE 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스틴 안디옥 교회 담임목사로서 우리 교회 공동체를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하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지도할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경건의 모양을 강조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허락하소서.
신자도 리더도 우리가 우리 능력으로 선행을 하려는 소망을 키워 나가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렇게 못함으로 더욱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업드리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위로와 은혜로 채움을 소망하는 기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