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1월24일 #수요일 #욥기 30:16-31
욥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토로한다. 주님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있고, 주님은 자신을 돌보지 않으심을 느끼고 있다한다. 욥의 자신이 처한 처절한 상황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욥 30: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하나님이 아닌 자신도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서 울고 빈궁한 자를 위하여 마음에 근심을 해 주었는데, 하나님 앞에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 자신에게 복이 아닌 화가 왔고 광명이 아닌 흑암이 다가왔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지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고,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내게도 욥과 같은 답답함이 없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 특별한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 고통과 환난이 올 때, 주님께 순종 했는데 아픔이 오고 왜 이런 일이 생긴것일까?라는 의문과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 내게도 있었다.
감히 욥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내게 허락된 답답함의 시간들은 결국 고통의 시간 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답답함이 해결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제일 답답할 것 같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기라도 한다면,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텐데, 여전히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답답한 것이다.
그렇다고 욥이 주님께 기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는 주님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신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부르짖음에도 고통의 이유와 원인을 알려주시지 않으실까?
그럴 때 나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끝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원망하는 것을 멈추고, 끝까지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해야하는 것일까?
둘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말씀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과 사도바울과 같은 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환난을 당하면서까지도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님을 드러내려고 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혔을 때에도 찬양을 했고, 제자들은 순교하면서까지도 복음 전하는 길을 걸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환경속에 주님이 나를 왜 이렇게 버려두시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들이라면, 그 상황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들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결국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말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을 깨닫는다. 주님은 그런 나를 기다리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내가 할 것은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여 나를 통해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루가 되길 결단한다.
사랑의 주님.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말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나게 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