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여는아침 #이목사큐티 #11월4일 #금요일 #창세기43장1_14
땅에 기근이 심하고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게 되니 이스라엘은 다시 곡식을 사오라고 시킨다. 이에 유다가 베냐민과 함께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한다. 유다의 설득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가 가지고 가고, 갑절의 돈을 가져가고,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것이라 각오하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한다.
창세기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때 나의 계획이 시작된단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진퇴양난에 빠진 이스라엘. 더이상 뒤로 물러 설 곳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아들들에게 다시 곡식을 구해오라 시켜본다. 이에 유다는 요셉이 말했던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베냐민을 데려가야한다며 아버지 이스라엘을 설득시킨다. 결국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자신의 손에서 놓는다. 이와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므온과 베냐민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사람은 더이상 뒤로 물러 설 곳이 없을 때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것 같다.
유다는 그의 말 "두번이나 애굽에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은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식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굶어죽는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데려가게 한다. 그러면서 벌써 찾고, 구했어야 하는 기도를 이제야 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속에 나를 이끌어가시는데도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없었는가?
물론 자식들을 잃는 슬픔과 두려움은 아버지인 이스라엘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기에, 베냐민을 내려놓기까지의 결단은 더욱 지체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놓게되기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상황과 결정권까지 주님께 맡겨드렸다면 어땠을까?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라고 하는 말이 내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먼저 구하는 기도를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으로 들린다.
도마의 믿음이 생각이 난다. 내가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은 복되도다" 말씀하셨다.
갈때까지 가기 전에 주님 앞에 먼저 나아가는 모습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일어났음에도 이리 저리 내가 혼자 해결하겠다고 버티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그 즉시로 주님 앞에 나아가자. 그것이 주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나의 신앙의 모습이다. 나의 고집과 아집은 하나님을 역사하지 못하게만 할 뿐이다.
결국 내 손에 잡고 있는 것을 놓을 때, 주님을 붙잡을 수 있다.
오늘도 내가 놓지 못하고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주님께 맡겨드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정작 SAT날짜가 다가오고, 대학을 어떻게 준비시켜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니, 주님께 맡겨드리기보다는 내 생각이 앞서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니, 그 성공의 기준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내면을 보게 하셨다. 주님께 맡겨드리지 못하고 내가 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주님께 나아간다. 주님께 맡겨드린다. 학업도, 그들의 진로도, 그리고 그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주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다.
사랑의 주님. 제가 고집과 아집으로 지체하지 말게 하소서. 저의 지체로 주님의 역사를 늦추지 말게 하소서. 아이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내 생각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세상의 기준에 부합한 자로 키우려 하다가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께 맡겨드리며 말씀중심으로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인생들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