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8월5일 #목요일 #사사기 1:22-36
요셉가문이 벧엘을 치러 올라 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런데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을 통해 정탐꾼들이 성읍의 입구를 알게 되어 그 성읍을 치게된다. 그런데 살아남은 그 한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다시 루스를 세웠다.
므낫세,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자손들은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여서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납달리는 가나안 족속 주민들을 종으로 삼고, 단 자손은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서 골짜기에서 고립당하였다. 요셉 가문의 힘이 강성해졌을 때, 아모리 족속은 노역을 하게 되었다.
사사기 1: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곳의 이름이 되니라"
요셉 자손들에게 선대를 받은 한 사람이 또 다른 루스 곧 우상을 섬기는 곳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를 묵상해본다.
여리고성을 정탐하였을 때 만났던 라합과 오늘 벧엘 성읍의 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
그것은 라합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깨닫고, 믿었던 것이고, 벧엘 성읍의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이 섬기는 우상을 끝까지 붙잡았던 것이다.
요셉가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얻는 조건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 사람을 살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불씨가 되어서, 또 다른 지역에서 우상을 섬기는 성읍을 세우게 된다.
벧엘을 정복하는 것은 단순히 땅만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이로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미션에 실패를 한 것이다.
우상의 자리만 옮긴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요셉 자손들은 그 땅을 차지한데 의의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명확하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가나안을 영적으로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었다.
가나안땅은 결국 선교지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체험한 자들이 영적으로 정복해야 하는 그 땅, 하지만 그들은 그땅은 점령한 것 같아보였을지언정, 그들의 영은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정복을 당하였다.
불씨를 남겨두면 안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이 없으면 내 안에는 여전히 세상의 불씨가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씨를 찾아본다.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덮여지지 못한 부분이 무엇일까? 어느정도 타협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남들이 다 하면, 나도 해도 된다는 마음 아닐까? 내 안에는 그런 마음이 어느정도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no 를 하다가도, 누구나 다 하면 어느정도 타협을 하여서, 나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음이 아닌것을 깨닫는다. 절대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 왜 유난스럽지? 라는 생각은 세상이 주는 생각이다.
말씀에 비추어서 아닌것 같을 때에는, 끝까지 아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순종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주님. 제게는 여전히 세상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견디고 버티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적당히 타협하려는 마음 말이에요. 하지만 이 것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순종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마음이 아닌, 말씀에 비추어 한번 아닐때에는 끝까지 NO를 하는 고집(?)이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