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사큐티 #4월24일 #토요일 #출애굽기 9:1-12
여호와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면서 다시 경고하시는 것은 가축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 한번 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인들과의 구분을 보여주신다. 바로는 사람을 보내어 이를 확인하지만, 그로 더욱 더 마음이 완악해진다. 이제 종기의 재앙을 통해 애굽인들의 몸을 치기 시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그 마음에 회개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더 주님에게서 멀어져간다.
출애굽기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재앙의 수위를 높이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완악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신다. 바로가 하나님의 능력을 몰랐을까? 이미 파리떼의 재앙에서 바로는 하나님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그는 끝까지 악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2절 말씀에 대한 오해를 많이하게 된다. 마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로가 마음을 돌이키시길 누구보다도 원하지 않으셨을까?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원하셨기에 계속해서 낮은 수위로부터 재앙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의지로 인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리하기를 결정한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를 조정하시려고 마음먹으셨다면, 완악하게 하려고 하기 보다는 바로가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도록 만드셨을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 중,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 당시에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시고, 급기야 예수님을 파는 자까지도 그냥 놓아두셨을까?
그리고 왜 이것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을 하셨을까? 를 묵상해본다.
물론 인간세계 시간의 개념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을때, 인간에게 말씀으로 허락하신 예언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미 다 그들의 자유의지로 어떻게 하실지를 알고, 보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인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하나님은 경고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게 대해서 예언해 주시는 것이다.
쉽지 않다. 내가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묵상하며 이해한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
결국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중에 바로는 끝까지 마음을 닫고 있음으로 그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바로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지 않는 것 자체를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라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는것을 깨닫는다.
종종 "왜 하나님은 다 아시면서 그러셨어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사람들은 조정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왜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해 주셨는가?"에 대해 불평을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 또한 내 자유의지인데,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이하면, 화살을 주님께로 돌리는 죄악의 마음이 내게 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기로 결단한 것 자체가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그렇게 완악하게 만드신것"으로 표현되어짐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정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국 예정론은 이미 처음과 마지막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것이다. 나의 자유의지를 통해 나는 오늘도 무엇을 선택하며 주님안에 거하는지를 돌아본다.
내게 아무리 큰 이적이 일어나도, 내가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나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죄의 종노릇하는 자일뿐이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보기를 원한다. 순간 순간 내가 하는 행동들과 생각들을 기억해보고, 내 안에 완악함을 정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기도해본다.